2026-04-02
수석 자리에서 배운 것
이건준 · 대금 연주자
서울시청소년국악단에서 대금 수석을 맡았던 시간은 제 연주 인생에서 가장 많이 배운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수석이라는 자리에 앉기 전까지 저는 연주를 개인의 일로만 생각했습니다. 내 소리를 다듬고 내 무대를 준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자리는 저에게 전혀 다른 종류의 과제를 주었습니다.
수석의 소리는 기준이 된다
수석의 첫 번째 역할은 파트의 기준음이 되는 것입니다. 제 음정과 음색이 곧 대금 파트 전체의 좌표가 됩니다. 혼자 연주할 때는 그날의 해석에 따라 소리를 바꿀 수 있지만, 수석의 소리가 매일 흔들리면 파트 전체가 흔들립니다. 일관된 소리를 유지하는 것이 개성 있는 소리를 내는 것보다 먼저라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숨자리 하나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어디서 숨을 쉬는지에 따라 파트원들의 호흡이 정해지고, 프레이즈의 모양이 정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악보에 제 숨자리를 명확히 정리하고, 그것을 파트 전체가 공유하도록 했습니다. 개인 연습에서는 감각으로 하던 일을 언어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배웠습니다.
듣는 방향이 바뀌다
수석을 맡으며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귀의 방향입니다. 그 전까지 저는 주로 제 소리를 들었습니다. 수석이 된 뒤에는 파트의 소리, 다른 파트와의 균형, 지휘자의 의도를 동시에 들어야 했습니다. 내 소리가 얼마나 좋은가보다 전체 안에서 내 소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묻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은 지금 독주를 할 때도 저를 따라다닙니다.
합주에서 대금은 앞으로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가 분명한 악기입니다. 대금의 음색은 강해서, 절제하지 않으면 전체의 균형을 쉽게 무너뜨립니다. 수석으로서 저는 파트가 나설 자리와 받칠 자리를 판단하고 그 판단을 소리로 먼저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잘 부는 것과 잘 물러나는 것이 같은 무게의 기술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린 단원들 앞에서
청소년국악단이라는 특성상 저보다 어린 단원들과 함께했습니다. 그들이 저의 연습 태도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단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리허설에 먼저 와서 준비하는 것, 지적을 받았을 때 변명하지 않는 것 같은 기본들이 수석의 실질적인 언어였습니다. 말로 하는 조언보다 앉아 있는 자세가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저 역시 그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어린 단원들의 겁 없는 소리, 계산하지 않는 표현을 들으며 제가 어느새 안전한 연주에 길들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가르치는 자리는 결국 자신을 비추는 자리였습니다.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과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라는 사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수석의 일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온 지금, 저는 무대에 혼자 서 있을 때도 합주하듯 연주하려 합니다. 장고와의 호흡, 공간과의 호흡, 청중과의 호흡을 듣는 귀는 수석 자리에서 길러진 것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저는 그곳에서 실감했습니다. 그 자리가 요구했던 만큼, 저는 자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