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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9

매일 연습의 구조

이건준 · 대금 연주자

연습량을 묻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시간보다 구조가 먼저라고 답합니다. 같은 네 시간이라도 순서 없이 곡만 반복한 네 시간과 설계된 네 시간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듭니다. 저의 하루 연습은 크게 세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리를 만드는 층, 기술을 다듬는 층, 음악을 짓는 층입니다.

첫 층 — 롱톤으로 소리를 세운다

연습의 시작은 언제나 롱톤입니다. 저음부터 한 음씩, 한 호흡을 다 써서 길게 뻗습니다. 이때 듣는 것은 음정과 음색과 숨의 균질함입니다. 소리의 시작이 깨끗한지, 중간이 흔들리지 않는지, 끝이 무너지지 않는지를 순서대로 확인합니다. 화려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이 시간이 그날의 소리 전체를 결정합니다.

롱톤은 지루하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의 훈련이 됩니다. 한 음을 뻗는 동안 귀가 다른 생각으로 떠나면 그 롱톤은 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저는 음 하나마다 확인할 항목을 미리 정해 두고, 항목을 다 듣지 못했으면 같은 음을 다시 붑니다. 시간을 채우는 롱톤이 아니라 질문에 답하는 롱톤이어야 합니다.

둘째 층 — 시김새를 분해한다

소리가 서면 시김새로 넘어갑니다. 떠는 소리, 흘러내리는 소리, 밀어 올리는 소리 같은 장식들을 곡에서 떼어 내어 따로 연습합니다. 시김새는 곡 안에서만 연습하면 늘 하던 방식으로 굳어 버립니다. 분리해서 느리게, 과장해서, 다시 절제해서 불어 보면 같은 시김새 안에 있는 여러 층위가 드러납니다.

이 단계에서 저는 메트로놈과 녹음기를 함께 씁니다. 시김새는 감각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간의 영역입니다. 떨림의 속도, 흘러내리는 길이가 장단 안에서 정확한 자리를 가져야 합니다. 녹음을 들어 보면 몸의 감각과 실제 소리의 차이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그 차이를 좁히는 것이 이 층의 목적입니다.

셋째 층 — 바탕으로 조립한다

마지막 층은 산조 바탕이나 준비 중인 곡을 통으로 연주하는 시간입니다. 앞의 두 층에서 다듬은 부품들이 실제 음악 안에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는 되도록 멈추지 않습니다. 부분의 완성도는 앞 단계에서 책임지고, 이 단계에서는 흐름과 배분을 책임집니다. 멈추지 않는 통주만이 무대의 시간 감각을 길러 줍니다.

통주가 끝나면 짧게 기록을 남깁니다. 어느 대목에서 숨이 모자랐는지, 어느 이음새가 어색했는지 한두 줄이면 충분합니다. 이 기록이 다음 날 첫 층과 둘째 층의 과제가 됩니다. 연습이 하루로 끝나지 않고 순환이 되는 것은 이 기록 덕분입니다. 어제의 통주가 오늘의 롱톤을 정해 줍니다.

구조는 지키되 자신을 살핀다

물론 이 구조를 기계처럼 지키지는 않습니다. 몸이 무거운 날은 첫 층을 길게 잡고, 무대가 가까운 시기에는 셋째 층의 비중을 높입니다. 구조의 목적은 저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컨디션이 나쁜 날에도 연습이 무너지지 않게 받쳐 주는 것입니다. 기분에 따라 연습하는 사람은 기분이 나쁜 날 연습을 잃습니다.

결국 매일의 연습은 매일의 나를 만나는 일입니다. 같은 순서로 연습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제와 오늘의 차이가 선명하게 들립니다. 저는 이 반복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반복 안에서만 보이는 변화가 있고, 그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연주자의 하루하루라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