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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5

청소리에 대하여

이건준 · 대금 연주자

대금에는 다른 관악기에 없는 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취구와 지공 사이에 있는 청공입니다. 여기에 갈대의 속막인 청을 붙이면, 센 입김에 청이 떨리면서 특유의 울림이 소리에 얹힙니다. 사람들이 대금 소리에서 받는 강렬한 인상의 많은 부분이 이 청소리에서 옵니다. 저는 청소리가 대금의 서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떨림은 통제 위에서만 아름답다

청소리는 그냥 세게 분다고 나는 소리가 아닙니다. 입김의 압력이 어느 문턱을 넘어야 청이 울기 시작하는데, 그 문턱 근처를 얼마나 정교하게 오가느냐가 관건입니다. 무작정 세게 불면 청이 찢어질 듯 갈라지고, 소극적으로 불면 청이 깨어나지 않아 밋밋한 소리가 됩니다. 우는 것과 우는 척하는 것 사이의 좁은 길을 숨으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청소리 연습은 결국 압력 조절 연습입니다. 저는 같은 음을 청이 울지 않는 세기부터 충분히 우는 세기까지 계단처럼 올려 가며 불어 봅니다. 어느 지점에서 청이 깨어나는지, 그날의 문턱을 매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문턱은 날씨와 청의 상태에 따라 매일 조금씩 다릅니다. 어제의 감각을 그대로 믿으면 오늘 배신당합니다.

청을 관리하는 일

청은 살아 있는 재료입니다. 습도에 민감해서 건조하면 뻣뻣해지고 습하면 늘어집니다. 연주 전에 청의 상태를 확인하고 조절하는 일은 연주자의 기본 업무입니다. 저는 무대가 있는 날이면 공연장의 공기부터 살핍니다. 리허설 때 잘 울던 청이 본 공연의 조명 아래에서 다르게 반응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청을 붙이는 일 자체도 공부였습니다. 너무 팽팽하게 붙이면 소리가 굳고, 너무 느슨하면 잡음이 섞입니다. 선배들과 선생님들의 손끝을 보며 배웠지만, 결국 자기 소리에 맞는 장력은 자기 귀로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기를 다루는 일과 재료를 다루는 일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저는 이 악기의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울리고 언제 아낄 것인가

기술적으로 청을 울릴 수 있게 된 다음에는 더 어려운 질문이 옵니다. 언제 울릴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처음에는 청소리가 좋아서 어디서나 최대로 울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내 우는 소리는 결국 아무 데서도 울지 않는 소리와 같아집니다. 산조의 절정에서 청이 터질 때의 힘은, 그 앞에서 아껴 온 시간이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김동진류 산조를 공부하면서 이 배분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대목에서 소리를 눌러 두고 어느 대목에서 청을 열어 줄지가 바탕 전체의 설계와 맞물려 있습니다. 청소리는 장식이 아니라 구조의 일부입니다. 소리 하나의 문제가 음악 전체의 문제와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청소리를 다루면 다룰수록, 저는 이 소리가 대금의 감정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목소리도 감정이 실릴 때 떨립니다. 대금은 그 떨림을 갈대 속막 하나에 맡겨 두었습니다. 그 얇은 막을 울리기 위해 오늘도 숨의 문턱을 더듬는 일이, 제게는 연주의 가장 깊은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