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1
전공을 고민하는 학생에게
이건준 · 대금 연주자
대금을 전공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재능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습니다. 저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치며 이 길을 걸어왔지만, 그 질문에 시원하게 답해 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지나온 길에서 확인한 것들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재능보다 먼저 확인할 것
저는 재능이라는 말을 크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학생 시절에 눈에 띄던 재능이 몇 년 뒤에도 앞서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오래 남는 것은 연습을 견디는 힘이 아니라 연습을 반복할 수 있는 성질이었습니다. 견딘다는 말에는 이미 괴로움이 들어 있습니다. 매일 같은 롱톤을 불면서 그 안의 작은 차이를 재미있어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일에 맞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은 무대의 화려함이 좋은가가 아니라 연습실의 단조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가입니다. 전공의 시간 대부분은 무대가 아니라 연습실에서 흐릅니다. 무대는 일 년에 며칠이고 연습은 매일입니다. 그 매일이 싫지 않다면, 재능에 대한 질문은 조금 뒤로 미뤄도 됩니다.
콩쿠르와 등수에 대하여
전공을 하면 콩쿠르와 등수의 세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학생부 대회에서 시작해 여러 무대를 거치며 상도 받고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등수는 그날 그 심사위원들 앞에서의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과에 따라 연주 인생 전체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이 길은 금방 괴로워집니다.
다만 콩쿠르를 외면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목표가 있는 준비는 실력을 압축적으로 끌어올려 주고, 무대 경험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콩쿠르는 이용하되 콩쿠르에 살지는 말라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상은 지나가고 그 준비 과정에서 늘어난 실력만 남습니다. 남는 쪽에 마음을 두기 바랍니다.
부모님과 현실에 대하여
전공을 고민할 때 현실적인 걱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통 음악으로 생계를 꾸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걱정은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저는 이 걱정을 가볍게 반박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길은 안정과 거리가 있고, 그것을 모르고 들어오면 나중에 음악까지 미워하게 됩니다. 걱정하는 어른들의 말은 흘려듣지 말고 정보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이 길에는 다른 곳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수백 년을 건너온 소리를 제 몸으로 다시 내는 일, 매일 조금씩 자라는 자신을 확인하는 일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조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 일이 아니면 안 되어서 남아 있습니다. 그 마음이 확인되기 전에는 결정을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잘하는가보다 지금 정직하게 연습하고 있는가를 보기 바랍니다. 실력의 차이는 시간이 상당 부분 좁혀 주지만, 연습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시간이 오히려 벌려 놓습니다. 전공을 하든 하지 않든, 정직한 연습의 습관은 어디로 가든 남습니다. 그것이 이 고민의 시기에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재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