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1
독주와 협연은 다른 근육이다
이건준 · 대금 연주자
독주와 협연을 처음에는 같은 일의 두 형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내 소리를 내는 것은 같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두 무대를 오가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독주와 협연은 같은 악기로 하는 다른 종목입니다. 쓰는 근육이 다르고, 훈련법도 달라야 합니다.
독주는 시간을 짓는 일이다
독주 무대, 특히 산조 무대에서 연주자는 시간의 주인이자 책임자입니다. 장고 반주가 함께하지만 흐름을 설계하고 끌고 가는 것은 결국 연주자 자신입니다. 어디서 몰아치고 어디서 풀어 줄지, 전체의 긴장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혼자 결정해야 합니다. 이 자유는 달콤하지만 무겁습니다. 잘못 지은 시간의 책임도 온전히 제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주를 준비할 때 저는 건축가의 마음이 됩니다. 바탕 전체의 설계도를 그리고, 절정의 위치와 그 절정을 받치는 축적의 구간을 정합니다. 연습도 전체 통주의 비중이 높아집니다. 삼십 분의 시간을 홀로 감당하는 지구력, 그리고 그 시간 내내 청중의 집중을 붙잡아 두는 서사의 힘이 독주의 근육입니다.
협연은 듣는 일이 절반이다
협연 무대에서는 전혀 다른 감각이 켜져야 합니다. 관현악과 함께 설 때 저는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 시간의 참여자입니다. 지휘자의 해석이 있고, 수십 명의 호흡이 있고, 그 안에서 대금의 자리가 있습니다. 독주의 습관대로 시간을 내 마음대로 늘이고 줄이면 전체가 어긋납니다. 자유의 총량이 줄어드는 대신, 함께 만드는 소리의 부피가 커집니다.
협연의 연습은 그래서 듣는 연습이 절반입니다. 총보를 보며 다른 악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고, 내 소리가 나설 자리와 스밀 자리를 구분합니다. 대금의 음색은 뚫고 나가는 힘이 강해서, 협연에서는 그 힘을 조율하는 것이 오히려 과제가 됩니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에서 수석으로 합주하던 시간이 이 감각의 바탕이 되어 주었습니다.
두 근육은 서로를 기른다
흥미로운 것은 두 종목이 서로를 길러 준다는 점입니다. 협연을 경험하고 돌아오면 독주의 귀가 넓어져 있습니다. 혼자 연주하면서도 장고를, 공간을, 청중의 호흡을 합주의 상대처럼 듣게 됩니다. 반대로 독주로 다져진 서사의 감각은 협연에서 긴 솔로 대목을 만났을 때 힘을 발휘합니다. 짧은 솔로 안에서도 기승전결을 지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한쪽 무대만 계속되는 시기를 경계합니다. 독주만 이어지면 소리가 자기중심으로 굳고, 협연만 이어지면 설계의 근육이 무뎌집니다. 일부러라도 다른 종목의 감각을 연습에 끼워 넣으려 합니다. 협연 시기에는 혼자 바탕 통주를 지키고, 독주 시기에는 합주 음원을 들으며 다른 소리와 맞추는 감각을 유지합니다.
결국 독주와 협연은 연주자의 두 다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쪽만으로도 설 수는 있지만 걸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두 무대를 오가며 걷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혼자서 깊어지고, 함께여서 넓어지는 것. 두 방향의 성장을 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