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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5

산조 한 바탕을 외운다는 것

이건준 · 대금 연주자

산조 한 바탕은 짧지 않습니다. 진양조에서 시작해 중모리, 자진모리로 이어지는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처음 전바탕을 외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이것이 단순한 암기 이상의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가락의 순서를 아는 것과 그 긴 시간을 끌고 가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었습니다.

순서가 아니라 구조를 외운다

산조를 가락 순서대로만 외우면 반드시 한계가 옵니다. 앞 가락이 다음 가락을 불러 주는 방식의 암기는 사슬과 같아서, 고리 하나가 끊어지면 그 뒤가 전부 사라집니다. 저는 바탕 전체를 장단별로, 그 안에서 다시 단락별로 나누어 각각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대목은 소리가 눌리는 곳, 이 대목은 풀어 주는 곳, 이런 식입니다. 순서의 암기가 지도의 암기로 바뀌면 어느 지점에 떨어져도 자기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단락마다 첫 음과 숨자리를 따로 외우는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대에서 기억이 흐려지는 순간은 대개 단락과 단락의 이음새에서 옵니다. 이음새마다 다음 단락의 첫 호흡을 몸에 박아 두면, 머리가 잠시 비어도 손과 숨이 먼저 움직입니다. 저는 이것을 몸이 앞서가게 만드는 연습이라고 부릅니다.

장단이 기억의 뼈대다

산조의 암기에서 장고 장단은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기억의 뼈대입니다. 진양조의 긴 호흡, 중모리의 걸음, 자진모리의 몰아침은 각각 다른 시간 감각을 요구합니다. 저는 가락을 외울 때 반드시 장단을 입으로 짚으면서 외웁니다. 장단 없이 외운 가락은 무대에서 장고가 들어오는 순간 어긋나기 쉽습니다. 가락과 장단을 처음부터 한 몸으로 외워야 합니다.

느린 장단일수록 외우기가 어렵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자진모리는 손이 기억하지만 진양조는 마음이 기억해야 합니다. 음 사이의 긴 여백에서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까지 외워야 진양조를 외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백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다음 소리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잊어버리는 연습

역설적이지만, 전바탕을 완전히 외운 뒤에는 잊어버리는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외운 것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연주하면 음악이 딱딱해집니다. 충분히 몸에 들어온 뒤에는 기억을 의식에서 놓아 주고, 소리의 흐름 자체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때부터 산조는 암기한 곡이 아니라 제가 하는 이야기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놓아 주기 위해서는 먼저 완전히 붙잡아야 합니다. 어중간하게 외운 상태에서 흐름에 맡기면 그것은 해석이 아니라 사고입니다. 저는 지금도 주기적으로 바탕 전체를 아주 느린 속도로 점검하며 지도가 흐려진 곳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외움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계속 갱신되는 상태입니다.

산조 한 바탕을 외운다는 것은 결국 삼십 분이 넘는 시간을 혼자 책임지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그 시간 동안 의지할 것은 악보도 지휘자도 아닌, 몸에 새겨 둔 지도와 장단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바탕을 외우는 과정 자체가 연주자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외우고 나면, 외우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