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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2

무대라는 훈련장 — 공연 전후의 규율

이건준 · 대금 연주자

연주자의 실력은 연습실에서 만들어진다고들 하지만, 저는 절반만 동의합니다. 연습실에서 만들어진 것을 실력으로 굳혀 주는 곳은 무대입니다. 다만 무대가 훈련장이 되려면 무대를 대하는 규율이 있어야 합니다. 공연 전날부터 공연 다음 날까지, 제가 지키는 절차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전날 — 더하지 않는 날

공연 전날의 원칙은 하나입니다. 아무것도 새로 더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날 연습은 통주 한 번과 걱정되는 대목의 가벼운 확인으로 끝냅니다. 전날 밤에 해석을 바꾸거나 안 되던 기술을 몰아붙이는 것은 예외 없이 손해였습니다. 몸에 익지 않은 변경은 무대에서 반드시 청구서를 보냅니다. 전날은 쌓는 날이 아니라 정돈하는 날입니다.

악기 점검도 전날 마칩니다. 청의 상태를 확인하고 여분의 청을 준비하고, 무대 의상부터 악보까지 가방을 전날 밤에 쌉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당일 아침에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일은 그날의 침착함 전체를 갉아먹습니다. 준비물이 완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마음의 바닥을 받쳐 줍니다.

당일 — 절차가 나를 데려간다

공연 당일에는 정해 둔 절차를 순서대로 따라갑니다. 일어나는 시간, 몸을 푸는 순서, 소리를 여는 워밍업의 내용까지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당일의 저는 판단을 최소화하고 절차가 저를 무대까지 데려가게 합니다. 긴장한 머리는 좋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므로, 판단은 평온했던 과거의 제가 미리 해 둔 것을 씁니다.

리허설에서는 소리를 아끼되 공간을 충분히 읽습니다. 공연장마다 울림이 다르고, 울림이 다르면 시김새의 크기와 여백의 길이가 달라져야 합니다. 리허설의 목적은 잘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답을 얻는 것입니다. 본 공연 직전에는 무대 뒤에서 내쉬는 호흡을 반복하며 몸을 아래로 가라앉힙니다.

다음 날 — 기록이 무대를 완성한다

저는 무대가 끝난 다음 날을 무대의 일부로 봅니다. 다음 날에는 반드시 실황 녹음을 듣고 기록을 남깁니다. 잘된 것 세 가지와 아쉬운 것 세 가지를 적는 단순한 형식입니다. 잘된 것을 먼저 적는 이유는, 아쉬움만 적다 보면 복기가 자책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복기의 목적은 반성이 아니라 다음 무대의 과제를 뽑아내는 것입니다.

녹음을 들을 때는 연주 직후의 감정과 실제 소리의 차이에 주목합니다. 무대 위에서 무너졌다고 느낀 대목이 녹음에서는 무사히 지나간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이 차이를 확인하는 일이 쌓이면 무대 위에서의 자기 감각이 점점 정확해집니다. 감각이 정확해지면 무대 위에서 불필요하게 놀라는 일이 줄어듭니다.

이 절차들이 거창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는 작은 습관일 뿐입니다. 다만 이 작은 습관들이 무대를 일회적인 사건에서 반복 가능한 훈련으로 바꿔 줍니다. 무대가 훈련이 되면 무대의 수만큼 자랍니다. 저는 다음 무대에서도 같은 절차로 준비하고, 같은 형식으로 복기할 것입니다. 규율은 저를 묶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저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